여전히 활기찬 목소리였다. 반가운 마음에 만사 제치고 베이징역으로 달려갔다. 중국 대륙을 횡단하기 위해 야간 기차를 타고 시안으로 가는 길이란다. 기차 출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역 안의 한 카페에서 간단히 맥주를 나누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그는 자신보다 갑절쯤 큰 배낭을 등에 멘 채, 또 하나의 보조 배낭을 앞에 메고 낙하하는 특전사 요원처럼 씩씩하게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바람의 딸’ 한비야(48)씨는 기자가 10년 전 베이징 특파원으로 근무할 당시 그렇게 거침없는 모습으로 대륙에 스며들어갔다. 그 이전 한씨가 홍보회사에 근무할 때부터 알고 지내던 기자는 북한산 ‘청심환’을 비상약품으로 쓰라고 주었고, 한씨는 중국 내륙에서 배탈이 나 고생하던 아이에게 그 약을 줘 큰 인심을 얻었다고 했다.
자신의 뜨거운 피가 향하는 대로 7년간 세계의 오지를 경험하며 거침없는 삶을 살아온 한씨는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이라는 책으로 청소년들에게 넓은 세상을 향하는 꿈을 심어주었다. 5년 전부터는 월드비전에서 긴급구호팀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전쟁과 재난 지역에 뛰어들어가 인류애를 심어주는 일을 하며 또다른 감동을 선사해 왔다. 그런 한씨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