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교수는 “둥근 균이 내뿜는 젖산 탓에 김치의 산도는 점점 높아지는 데 산도가 0.5%(식초는 3%)가 되는 순간, 둥근 균은 쇠퇴하고 그 때부터 막대 균이 기하 급수로 증식한다.”고 말한다. 젖산균의 세력 교체인 셈이다. 산성에 강한 막대 균은 이 때부터 김치의 운명을 다하는 ‘산도 1%’의 시기까지 계속 세력을 확장한다.
김치는 유독 젖산균이 똘똘 뭉쳐 생태계를 지배하는 독특한 식품이다. 곰팡이, 세균, 효모 등이 섞여 사는 보통의 발효 식품과 달리 김치는 젖산균의 지배 체제가 워낙 공고하게 구축돼 있다는 것이다. “20여 년 동안 갖가지 김치들을 다 헤집어 봤는데 정말 다른 균은 찾기가 힘듭니다. 김치가 잘 익었을 땐 젖산균밖에 없더라고요. 요구르트는 비교도 안 되는 수십 가지 젖산균들의 덩어리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 김치죠.” ‘김치 박사’ 한 교수의 말이다.
그렇지만 젖산 왕국도 산성화가 진행되면서 최후를 맞이한다. 1mL의 김치에 최대 10억~100억 개까지 증식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막대 균조차 자신이 만든 젖산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사멸하는 사이에, 젖산을 먹어치우는 효모가 마지막 ‘해결사’로 등장한다. ‘군내’가 나고 김칫국물에 허연 효모가 뜨기 시작하면 젖산 왕조는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김치 미생물들이 실험실에서 조금씩 규명되면서 이제 김치는 ‘어머니 손맛’이 아니라 미생물에 의해 맛이 조절되는 새로운 김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김치 젖산균 가운데 맛을 좌우하는 우수한 젖산균들을 찾아 낸다면, 이들을 “씨앗균을 찾아 내는 일은 김치를 국제 식품화하는 ‘차세대 김치’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치즈나 요구르트는 이런 씨앗균을 찾아 내어 국제 식품으로 성공시킨 대표 사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