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나는 시를 쓰면서 늘 어린이의 시선을 닮으려고 애쓴다. 때묻지 않은 어린이의 시선이야말로 시인의 시정신과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도 어린이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사물을 노래하기도 하고 어린이의 눈에 비치는 자연과 인간의 참모습을 노래하려 하기도 한다.
(나) 큰소리 치면서 작은 것 잡아먹는
상어나 문어는 나는 싫다아.
잘 생기고 커다란 과일도 싫다아.
꼴뚜기와 모과가 나는 젤이다아.
오늘 오가혜 그림 일기는 이만 끝.
(다) 모스 무선 전신 부호로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남몰래 편지를 쓴 이 소년이야말로 눈빛이 빛나는 ‘시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 딸에게 편지를 쓴 얼굴도 모르는 소년의 편지를 읽다 보니, 시인이 심혈을 기울여서 쓴 좋은 시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좋아하는 여학생 앞에서는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려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그냥 도망가고 싶다는 이 소년의 고백보다 더 아름다운 시가 있을까?
(라) 연희가 사는 집은 버스 정류장에서 계단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달동네였다. 그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올려다보노라면 이것이 하늘까지 닿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때론 ‘오즈의 마법사’에서의 그 황금빛 벽돌로 된 길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 길에 비해 이 곳의 계단 길은 너무도 초라했다. 삐뚤삐뚤 휘어진 길들은 여기저기가 깨지고 시멘트로 덕지덕지 발라 놔서 누더기 같았고, 연희가 오르내리기에는 너무 높았다. 길옆으로 빼곡이 들어서 있는 집들도 초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벽돌들로 차곡차곡 쌓은 것이 아니어서 모두 회색빛 이었고, 여기저기 흙이 보이는 벽은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푸석한 먼지와 함께 부서져 내릴 것만 같았다.
(마) 없는 것을 억지로 꾸며낸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저의 경험을 떠올리며 만들었습니다. 모레가 그득히 쌓여 있는 공사장이 최고의 놀이터였던 것도 제 경험이지요. / 또, 연희와 연희 엄마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만약,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어떤 마음일까, 무슨 말을 했을까 상상도 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