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길동이 절하고 말씀드리기를
“소인이 평생 서러워하는 바는, 소인이 대감의 정기(精氣)를 받아 당당한 남자로 태어났고, 또 낳아서 길러 주신 어버이의 은혜를 입었는데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 하옵고 형을 ‘형’이라 못 하오니, 어찌 사람이라 하겠습니까?”
하고, 눈물을 흘리며 적삼을 적셨다.
(나) 하루는 길동이 어머니의 침소에 가 울면서 아뢰었다.
“소자(小子)가 모친(母親)과 더불어 전생의 연분이 중하여 이번 세상에 모자(母子)가 되었으니, 그 은혜가 지극하옵니다. 그러나 소자의 팔자가 사나워서 천한 몸이 되었으니, 품은 한이 깊사옵니다. 장부가 세상에 살면서 남의 천대를 받는 것이 불가(不可)한지라 소자는 자연히 설움을 억제하지 못하여 어머니의 슬하를 떠나오려 하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모친께서는 소자를 염려하지 마시고 귀한 몸 잘 돌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