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귀마당쇠'는 가면극의 대본이다.
1961년 서울대학교에서는 <향토개척단>이라는 농어촌 학생 활동단체가 있었다. 이 단체는 419직후에 활동한 서울대학교 국민계몽대의 법통을 받아 12개 단과 대학을 망라하여 조직되어 활동하다가 남민전 사건이 터지고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총맞아 죽던 해인 1979년 3월에 해단되었다.
1963 겨울 이 단체에서는 이미 의식화 운동의 하나로 제 1회 향토의식초혼굿(鄕土意識 招魂굿)을 기획하고 (4대 단장 송기중-현 서울대 국문과 교수 시기) 강연,사대주의 장례식, 살풀이, 가면극(원귀마당쇠),농악과 함께하는 뒷풀이 등을 내용으로 하는 축제를 벌였다.
나는 이미 졸업을 했으나 후배들 행사에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 때만해도 지금의 굿판같은 데 어울리는 '끼'를 기진 학생이 드믈었다. 남자 탈춤의 기본인 어깨흥을 추스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미 졸업한 이영윤 친구도 변학도로 뛰지 않울 수 없었다.
이 극은 곧 이어 대학을 벗어나 대구 경북고 학생과 경북대 학생들이 출연하여 대구 KBS방송국 공개홀인 KG홀에서 공연하여 절찬을 받았다. 그 때 연출은 내가 맡았다. 사대주의 장례식에 사용된 상여와 허수아비를 기가 막히게 만들어 박수를 받았던 임동규 친구가 2001 민족통일대축전에 범민련 남측 부의장 자격으로 방북했다가 문제가 되어 아직도 공판에 계류중임이 안타까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