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신라의 토지 제도 변천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가)의 결과로 옳은 것은?
문무 관료전을 지급하되, 차등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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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관의 녹읍을 혁파하고 매년 조(租)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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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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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내외관의 월봉을 없애고 다시 녹읍을 나누어 주었다.
①농민 경제의 안정
②국가 재정의 확충
③사회 계층 간의 대립 완화
④귀족의 농민에 대한 지배 강화
⑤귀족에 대한 국왕의 권한 강화
다음은 통일 신라 민정 문서의 일부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을 <보기>에서 고르면?
토지는 논⋅밭⋅촌주위답⋅내시령답 등 토지의 종류와 면적을 기록하고, 사람들은 인구⋅가호⋅노비의 수와 3년 동안의 사망⋅이동 등 변동 내용을 기록하였다. 그 밖에 소와 말의 수, 뽕나무⋅잣나무⋅호두나무의 수까지 기록하였다. 특히 사람은 남녀별로 구분하고, 16세에서 60세의 남자의 연령을 기준으로 나이에 따라 6등급으로 구분하여 기록하였다. 호(戶)는 사람의 많고 적음에 따라 상상호(上上戶)에서 하하호(下下戶)까지 9등급으로 나누어 파악하였다. 기록된 4개 촌은 호구 43개에 총인구는 노비 25명을 포함하여 442명(남 194, 여 248)이며, 소 53마리, 말 61마리, 뽕나무 4,249그루 등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보기>
ㄱ. 생산 활동은 노비가 주로 담당하였다.
ㄴ. 토지를 비옥도에 따라 6등급으로 나누었다.
ㄷ. 노동력과 생산 자원을 철저하게 관리하였다.
ㄹ. 호(戶)는 사람 수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누었다.
① ㄱ, ㄴ② ㄱ, ㄷ③ ㄴ, ㄷ
④ ㄴ, ㄹ⑤ㄷ, 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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