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무슨 어이없는 생각의 변화였을까? 나는 문득 무엇인가 큰 잘못을 하고 있다는 느낌, 특히 담임 선생님께서 부르시는데 뻗대고 있었던 것과 흡사한 착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때까지도 멈춰지지 않고 있던 아이들의 왁자한 웃음에 기가 죽어, 그게 굴욕적인 복종인 줄 알면서도 석대의 말을 따랐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머뭇머뭇 그에게 다가가자, 엄석대는 그 동안의 웃음을 그치고 웃는 얼굴로 바꾸며 물었다.
“나한테 잠깐 오기가 그렇게도 힘들어?”
목소리도 전과 달리 정이 듬뿍 묻어나는 듯하였다. 나는 그 너그러움에 하마터면 감격하여 펄쩍 뛰며 머리를 저을 뻔하였다. 아까보다는 다소 덜하기는 하였어도, 아직은 나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어떤 거부감이 겨우 그런 자존심 상하는 짓을 막아 주었다.
엄석대는 확실히 ㉠ 아이였다. 그는 잠깐 동안에, 내가 그에게 억지로 끌려갔다는 느낌을 깨끗이 씻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담임 선생님께 품었던 야속함까지도 풀어 주었다.
『“서울 무슨 학교랬지? 얼마나 커? 물론, 우리 학교와는 댈 수 없을 만큼 좋겠지?”
먼저 그렇게 물어 주어, 엄청나게 많은 학생 수와 오랜 전통이 있으며, 서울에서도 공부 잘 하기로 소문난, 내가 다니던 학교를 자랑할 수 있게 해 주었고,
“공부는 어땠어? 거기서 몇 등이나 했지? 다른 건 뭘 잘 해?”
그렇게 물어 줌으로써, 내가 4학년 때 국어 과목에서 우등상을 탄 것이며(그 때, 이미 그 학교는 과목별로 우등상을 주었다.), 또한 그 전해 가을에 경복궁에서 열린 어린이 미술 대회에서 특선한 것을 자랑할 수 있도록 하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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