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만들기, 평화지키기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적십자운동을 창시한 앙리 뒤낭이었다. 그 후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제적십자운동은 무려 세 번씩이나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올해는 그라민은행이 방글라데시의 극빈자를 추방하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는데, 이 은행도 적십자운동과 연계하고 있다. 적십자 인도주의는 평화를 만드는 노력과 헌신으로 이런 영광스러운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평화만들기(peace-making)와 평화지키기(peace-keeping)가 겉보기에는 비슷해도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평화지키기’는 힘의 논리에 서 있다. 힘이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 정치인들은 평화의 이름으로 군비를 확장시켰다. 적보다 강력한 힘을 길러야 비로소 전쟁 억지가 가능하기에 평화가 지켜진다고 믿는다. 공포의 균형이 존중된다. 그런데 공포의 균형 속에는 피비린내 나는 보복의 악순환 논리가 숨쉬고 있다. 그래서 겉으로는 평화를 유지하지만 속으로는 국가자원을 칼가는 일에 소진시키게 된다. 폴 케네디의 주장대로 제국의 멸망의 길이 그렇게 해서 열리기도 한다.
이에 견주어 ‘평화만들기’는 전혀 다른 논리와 윤리에 서 있다. 우리의 힘을 남들과 나눌 때 비로소 참 평화가 온다는 확신이 바로 그것이다. 나의 나눔과 비움을 통해 남을 채워주려 할 때 평화는 세워진다. 우리 곁에 지극히 가난한 나라들이 있는데 나 몰라라 하면서 나만이 부강을 누린다면 ‘평화만들기’는 어렵다. 힘과 자원이 상대적으로 많은 나라가 그렇지 못한 나라와 교류협력을 할 때 비로소 선린, 상생의 관계가 이루어진다. 바로 여기에 공포의 균형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대신 상생의 균형이 지배하게 된다. 악순환은 가고 선순환은 작동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