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 사극’: 화면 속의 ‘페니스 파시즘’
현실이 버거울수록 민중의 두뇌를 마비시킬 초강력의 마취제가 더 필요해서일까? 불황으로 영세민의 생활이 망가지고 노동 불안화 정책으로 비정규직들이 대규모로 양산되는 이 시대에, 시청자로 하여금 현실의 애환을 잊고 화면 속의 볼거리에 몰입하게끔 만드는 사극들이 유달리 많이 나타난다.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 고대적인 갑옷·무기·의상도 ‘볼거리’지만 이들 영화는 무엇보다 보는 이의 ‘민족적 감수성’에 호소한다.
현실 속에서 입시 지옥과 대학들의 학비 인상, 취직난과 조기퇴직 압력, 비정규화와 부동산값 상승 등으로 늘 한숨만 쉬게 돼 있는 선남선녀들로 하여금 한나라, 당나라의 군대를 쳐부수는 등 ‘힘’을 과시해 온 고구려, 발해의 ‘기상’을 즐겨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껴 ‘위대한 과거’의 달콤한 꿈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문화전략인 셈이다. ‘북방 사극’들이 실제로 있었을 것 같지 않은 고구려인들의 단군 숭배 등을 연출시키면서 국수주의로 흘러간다는 비판은 이미 여러 번 제기됐는데, 사실 강경한 민족주의야말로 이 영화들의 호소력의 주된 기반인 듯하다. 민족주의란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존재해 온 다양한 종족, 국가들을 뭉뚱그려 ‘똑같은 우리 한민족’으로 묘사하여 이 ‘한민족’의 ‘기백’과 ‘힘’을 찬양하는 담론이다. 신자유주의가 심화되는만큼 현실에선 힘을 잃어가는 개개인들에게 바로 ‘우리 힘’의 숭배야말로 최적의 위로, 최강의 정신적 마취제가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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