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시대의 낭만주의자들
'낭만!'이라는 말처럼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것이 있을까? 그것은 보잘것없는 것에 품위를 부여하고, 사소한 것에 화려한 의상을 입히는 연금술이다. 초로에 접어든 가수 최백호가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슬픈 색소폰 소리 들어가며 지나간 시간을 노래했듯이 말이다.
10월 19일 서울대 교정, 한국 정치사의 영욕을 한 몸에 짐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핵 문제와 햇볕정책'을 강연했을 때, 필자는 죄송스럽게도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듣는 줄 알았다. 유엔 결의안이 선포된 지 불과 며칠 지난 시점에서, 노(老)대통령은 대화와 대북 지원이 더 현명한 방법임을 역설했다. "북한 핵실험은 북한과 미국의 공동 책임"임을 강조했을 때, 유엔에까지도 햇볕을 쪼여 보겠다는 노정치가의 의지가 읽혔는데, 그것은 슬프게도 '흘러간 옛노래'처럼 들렸다. 유엔 제재안이 발효된 상황이라면, 그 노래를 틀 때가 아닌 것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왜 급파됐을까? 화상회의로 무한정 토론이 가능한 시대에 왜 구태여 서울까지 왔을까? 전공이 국제관계학인 그녀는 이 사태에 대해 누구보다 할 말이 많았을 터인데, 왜 부시 대통령의 전언(傳言)만 되뇌며 돌아갔을까?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도 유엔 결의안의 대상이 됩니까?'라는 이 지극히 초보적인 한국적 질문에 대해 '한국 정부가 결단할 일'이라고 간단하게 답했다. 아소 다로 일본 외상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전율이 느껴질 만큼 냉정한 이 말 속에는 '유엔을 주시하라'는 경고가 들어 있지만, 애써 흘려듣고 싶은 게 국내 안보 실세들의 태도다.
|